또 다른 창녀 이야기 - 짧은 얘기 2개
컨텐츠 정보
- 조회 407
본문
또 다른 창녀 이야기 - 짧은 얘기 2개
실제 겪었던 나의 원나잇 경험담 그리고 은밀한 경험담 이야기 게시판입니다
난 젊은 시절 그러니까 약 20년 전에 혼자서 혹은 친구와 종종 창녀촌에 가곤했다. 당시 가격이 약 5000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지금 처럼 오랄을 해주는 경우는 없었고 그냥 누워서 열심히 운동하고 사정하고 끝나면 그냥 나오는 그런 종류 였지만, 이렇다할 분출구가 없었던 나에겐 언제나 즐거운 장소이기도 했다. 여기의 두편 짧은 이야기는 섹스에 관한 것이 아니다. 비록 창녀와의 이야기 이지만 지금도 가슴이 아련한 그런 짧은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1. 손바닥이 푸른 아가씨
어느 지역의 창녀촌이였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마도 용산 혹은 청량리가 아니었나 싶다. 그날도 수중에 돈이 좀 있고 여자 생각이 간절하여 친구와 둘이서 창녀촌엘 갔다. 그땐 여자를 찍어서 들어가지 않았고 아무 집에나 들어 가면 생판 첨 본 아가씨가 나오곤 했다. 그날도 방에서 조금 기다리니 어떤 아주 왜소하고 못생긴 촌스런 여자가 들어왔다. 나이는 20대 초반 정도였던 걸로 기억된다.
참으로 못생겼지만, 난 당시 창녀촌에서 여자 얼굴을 전혀 가리지 않았다. 어차피 내 욕망의 분출을 위한 것이었으니까. 그리고 당시의 창녀들은 지금 처럼 예쁘지 않았던 것같다. 대부분 궁티가 나는 촌스런 여자들이었던 걸로 생각된다.
그녀랑 어떻게 어떻게 해서 금방 관계를 끝내고 난 주섬 주섬 옷을 입고 나가려는 데 그녀의 손바닥을 우연히 보게됐다. 그런데 손바닥 생깔이 푸른 빛을 띄고 있는 거였다. 이상해서 손좀 보자고 하고 자세히 들여다 보니 정말 푸르딩팅한 색이 나는 거였다. 그래서 그녀에게 물어봤다. '손이 왜이래?' 그녀는 아무 말없이 두손을 모아 눈을 뭉치는 모습을 하고 두손을 흔든다. '그게 몬데?' 그년는 조용히 이렇게 말했다.
'사실 지가요, 얼마 전까지 버스 차장이었거든요. 돈 독이 올라서 그래요...'
난 왠지 모르게 가슴이 쓰려 왔다. 너무 힘든 노동에 지쳐 여기까지 흘러운 불쌍한 촌아가씨와 욕망의 분출구를 찾아 온 내가 묘하게 대비되면서....
2. 단추이야기.
그날은 혼자서 창녀촌에 갔었다. 뭐 똑같은 목적으로. 역시 아무 여자하고 대충 일을 치룬다음, 난 바지를 입고 남방을 입었다. 그녀는 친절하게도 내 남방 단추를 채워주었는데 갑자기 툭하고 단추가 떨어졌다. 단추는 바로 내 발 밑에 떨어졌다.
그런데 그녀는 단추를 찾지 못하고 바닥을 더듬거리는 거였다. 창녀촌의 방이라는 곳이 어디나 그렇듯 우중충하고 어두컴컴하긴 했지만, 단추를 못찾을 만큼 컴컴한 것은 아니었다. 난 무심고 단추를 주우며,'단추 여기 있잖아? 않보여?'하고 반농담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조용히 단추를 받으며, 자기가 꿰메 준다고 하며 다시 남방을 벗겼다. 그런데 그녀는 실통의 바늘은 찾았는데 실을 꿰지도 못하는 거였다. 이상하게 생각되어 물어 봤다 '정말 안보여? 눈이 나쁜가보다 그지?'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하길 '사실요 제가 청계천에서 미싱 일을 오래했는데요. 미싱 밖는 장소가 껌껌해서 그런지 야맹증에 걸린거 같아요...' 그녀도 너무 힘든 미싱 일을 그 젊은 나이에 이미 10년 가까이 했고, 더이상 견디다 못해 결국 창녀촌으로 흘러온 아가씨였다.
난 지금도 가끔 그녀들을 생각한다. 전혀 성적으로 발달되어 있지도 않고 전혀 날날이 끼도 없던 그녀들. 가난한 촌에서 태어나 배우지 못하고, 식량만 축내는게 미안해 일찌감치 낯선 서울에 왔을터. 배운 거없고 가진거 없는 그녀들이 할거라곤 버스 차장 아니면, 힘든 여공 일이 었으리라. 비참할 만한 노동환경에 말도 않되는 낮은 임금. 아무리 않먹고 않쓰고 발버둥 쳐도 남는건 밀린 방세와 동네 구멍가게의 외상값뿐. 알량한 구리무 하나 제데로 발라보지 못한 그여인들의 마지막 종착역이 서울 변두리의 창녀촌이 었겠지...
토도사 경험담 제공
관련자료
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