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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는 칼날처럼-먹힐 줄 아는 여자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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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을 가르는 칼날처럼-먹힐 ... - 1부

<먹힐 줄 아는 여자>
차가운 날이었다.
저녁무렵내내 서 있던 자지는 당장이라도 출발할 듯
기적을 울려대는 기차처럼 씩씩대며 숨어 있었지만, 터널이 없었다.
벌써 얼마나 못했던 걸까..
신음을 뱉듯 중얼거리곤 잠시 멈춰 서서 손가락을 꼽아보았다.
하지만, 따스했던 보지 속의 기억을 되새기기엔 손가락이 모자랐다.
담배를 꺼내 물고는 불을 붙혀 당기곤 길게 한 모금을 빨아보았다.
허공에 흩어지는 담배연기가 흐릿하게 여체처럼 보였다.
씨팔...
이런 걸로 태워 없앨 정력이 있다면, 몽땅 모아 어디 보지 속에라도
모두 털어 넣을 수 있었으면..
그런 하릴없는 생각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멀리 편의점의 벽에 걸린 시커먼 시계가 새벽 두 시 반을
가리키고 있었고, 갈 곳은 없었다.
그 때였다. 번쩍하는 자동차의 헤드라이트가 얼굴을 훑고 지나갔고,
이어 들려오는 소리와 함께, 한 대의 자동차가 거칠게
바람을 몰고 지나갔다.
늘상 있는 일이지만, 속마음이 거칠 때면, 사소한 일이라도
신경이 곤두서는 법이다.
개새끼들이.. 이런 골목에서 왜 저리 달려..
좋은 차 타고 다니면 단가..
차는 벤츠였고, 어두운 창 사이로 머리 두개가 보였다.
하나 그게 무슨 상관이랴..
단 세 걸음을 걷는 사이에 자동차는 눈앞에서도
머리 속에서도 사라지고, 내 발걸음은 어느새 개천으로
향하고 있었다.
이제 좀 있으면 겨울이 올테지..
하지만, 내 마음은 이미 겨울 한가운데였다.
한적한 개울가..
간간이 기집애들의 웃음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씨팔, 니들 보지좀 나눠주라..
봄에 취직에 실패한 후로..
벌써 반년째 백수생활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다지 성적이 좋진 못했지만, 그래도 졸업만 하면,
돈도 벌고 여자도 사귀고, 여행도 다니고 할 줄 알았다.
군대를 제대할 땐 얼마나 생의 의욕에 불탔었던가..
군문 밖은 그야말로 활짝 열려진 보지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취직이란 늦깎이 대학졸업반 학생에게
쉽지 않았고, 그리 시원치도 못한 간판들은
아예 시작부터 개집 취급이었다.
취직을 못 할거면 차라리 유급을 하더라도 대학에
남아있는 편이 낫다는 어느 허름한 선배의 자조 섞인 말이
새삼 떠올랐다.
미친놈, 대학은 공돈으로 다니나..
주머니 속에 달랑 천 원짜리 두어 장...
방에서는 곰팡이냄새가 코끝에 붙어 있고,
구석에는 구겨진 봉지 속에 들은 양말이랑 팬티 몇 장..
정력은 그래도 센 편이라 아침마다 솟구치는데,
옆방의 녀석은 거의 매일같이 여자를 끌어들여 노닥여댔다.
오늘도 옆방자식이 늘 보던 기집애가 아닌, 다른 애를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럴 때면 괜히 머리꼭지까지 열을 받곤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무슨 윤리관이 철저하거나 해서가 아니다.
그 증거로 그럴 때면 숨을 죽이고, 창문을 닫고,
문을 점검하고, 그리고 살며서 귀를 벽에 갖다 대곤 하니까...
뭐, 어디라고? 요앞 수퍼? 잠깐 기다려 금방 나갈께..
녀석의 핸드폰은 은색의 자그마한 것이다.
그 뭐라는 영화의 흉내를 내서 만든 선전에서
자주 나오던 것이다.
칠만 원짜리 월세 방에 살면서, 핸드폰은 무슨 얼어죽을...
잠시 후에 두런두런 소리가 나면서 녀석이 여자애를 데리고
들어오는 기척이 들렸다.
문틈으로 살짝 엿보니, 긴머리에 제법 늘씬한 기집애다.
내 눈이 여자의 길고 하얀 목덜미에 닿은 순간, 갑자기
머리속으로 피가 확 몰리면서 자지가 섰다.
흰색 미니스커트... 저 새끼.. 나중에 저 미니스커트를 벗기겠지..
그리고.. 저 빨간색 스웨터를 벗기고.. 브래지어도 벗기고..
갑자기 난 괜히 어쩔 줄을 몰라 방안을 왔다갔다 했다.
욕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윽고, 녀석이 방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문이 탁 하고 닫히고.. 그리고 찰칵 하는 문 잠그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덜컥덜컥..하고 손잡이를 돌려보는 소리..
인간, 한번 생겨먹은 꼴이 변할 리 없다고..
녀석은 이제까지 저런 짓을 내내 해 왔겠지..
그리곤 또 나처럼 누군가의 신경을 곤두서게 했을 테고..
그리고 그 자한테서 난데없이 문을 열리는,
그런 꼴을 한번 당한 게 틀림없어..
녀석은 늘 문을 잠그고는 꼭 서너번씩 확인을 했다.
... 왜 ... 문을 잠그는거야..?
여자의 목소리다.
벽이 그리 부실한 것도 아니었지만, 내 오감중에서
특히 청각은 예민했다.
하물며, 지금같은 상황에 내 청각은 평소실력의
이백 프로를 발휘하고 있었다.
... 그냥.. 춥잖아..
미친놈.. 문잠근다고 썰렁한 방이 따뜻해지냐?
... 춥다...
칠만 원짜리 방이다. 게다가 연탄도 떨어졌다구.
이 쌍놈의 동네는 언제나 도시가스가 들어올려는지..
도시가스는 고사하고 기름보일러도 없다.
70년대 구들이다. 그래서 보증금 70에 7만원인가부다.
... 와인 한잔 할래?...
하, 저 개새끼.. 대사까지 똑같다.
... 마음까지 따뜻해질거야..
아무래도 저새끼는 대본집이라도 갖고 있는 모양이다.
언젠가 우연히 옆방의 문이 잠깐 열려 있던 적이 있었다.
아마 잠깐 화장실이라도 갔었던 모양이다.
괜한 시샘과 궁금증으로 재빨리 모가지를 문틈으로 밀어넣었다.
제법 갖춘 인테리어..
유리병에 든 종이학더미(난 천마리의 학이니 어쩌니 하는
말을 잘 믿지 않는다. 지가 세어 본 것도 아닌데, 저깟 종이
더미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에, 오디오도 있고, 벽에는
싸구려 영화판넬도 붙어 있다.
블루.. 뭐라는 영화인데.. 그 아래에는 37.2도 라는 숫자가
써 있다.
그 숫자의 의미를 아는가..
바로 여자의 보지 속의 온도이다.
그리고 한쪽 구석에는 매트리스가 놓여져 있고, 그 위에는
몽고메리 빨간 담요와 앙증맞은 베개가 세 개 놓여 있다.
기집애들을 하도 끌어들이니 베개가 두 개 있는 것은
이해가 간다만, 나머지 하난 뭐에다 쓸까..
그 때 화장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고, 난 바로 모가지를 빼서
화장실로 갔다. 녀석이 엉거주춤한 폼으로 걸어나왔다.
자지라도 씻은 게지..
녀석이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까닥하고 지나간다.
그리고 조금 전에 내가 들여다보았었던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다시 찰칵, 그리고 철커덕철커덕, 확인하는 소리...
그 방에 지금 긴머리에 빨간 스웨터에 하얀 미니를 입은 여자가
들어와 있는 것이다.
잠시후,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 왜 이러는 거야?..
... 난 네가 좋아.. 정말 미치도록 예뻐서 견딜 수가 없어..
수작이 시작된 것이다.
여자는 잠시 반항하는 척한다.
하지만 남자 혼자 사는 방에 아무런 각오도 생각도 없이
들어오는 여자가 어디 있으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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