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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새살림 -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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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동딩동-

나는 퇴근을 하자마자 집으로 향했다. 혹시 아내가 있을까 궁금해 초인종을 눌렀다. 그러자 아내가 문을 열어준다. 나는 약간 의외였다. 아내가 그놈에게 또 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었나?

아내는 약간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밤새 잠도 못잤나? 내가 외박했다고 화가 난 것일까?

나는 못내 궁금했지만 그럼에도 아내에게 싸늘하게 아무 말도 안하고 그저 성큼성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아내 역시 나에게 왜 외박을 했느냐, 어젯밤 어디서 있었느냐는 등의 질문도 안하고 그저 내가 옷을 갈아입는 것을 도와줄 뿐이었다.

나는 그런 아내를 보며 괜히 마음속으로 찔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차라리 아내가 꼬치꼬치 캐묻기라도 한마면 모르겠는데 아무말도 안하자 괜히 어색하고 미안한 느낌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아내가 내게 물어온다.

<밥은요?>

<먹어야지.>

점심도 제대로 안 먹었는지라 배가 몹시 고팠다. 내가 몹시 시장기를 느끼자 아내는 척보고 그것을 알았는지 서둘러 저녁식사 준비를 한다. 

나는 무심한 얼굴로 쇼파에 앉아서 TV를 켜고 뉴스를 틀었다. 하지만 나의 온 신경은 아내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직장에서 퇴근한 남편을 위해 정성껏 식사를 준비하는 아내... 과연 그런 아내의 어디에 지난밤에 있었던 그런 음란한 모습이 있단 말인가... 아무리 찾아봐도 남편밖에 모를 것 같은 정숙한 아내의 모습이다...

내가 그렇게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아내가 크게 나를 부른다.

<여보, 식사 드세요.>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가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아내가 차려놓은 밥상 앞으로 갔다. 간만에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가 올라와 있었다. 얼마만에 아내에게 받아보는 따뜻한 밥상이란 말인가....

나는 식탁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내는 말없이 맞은편에 앉아 그런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 볼뿐이다. 

<당신은 저녁 안먹어?>

어색해진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난 점심을 늦게 먹었더니 생각이 없네요. 당신이나 많이 드세요.>

<....>

또 이어지는 어색하고 답답한 침묵... 나도 아내에게 딱히 할말이 없었고 아내도 나에게 딱히 할말이 없었다. 예전 같으면 정다운 대화가 오갔을 터인데...

결국 참다 못한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화났어?>

그러자 아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뭐가 화나요?>

<내가 외박했잖아...>

그러자 아내가 그제서야 아 그거라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글쎄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이걸 화가 났다고 해야 되는걸까?>

여전히 아리송한 아내의 대답... 도대체 아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통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런 이유로 나는 아내에게 답답함을 느꼈고 그것이 오히려 아내에게 절박하게 매달리는 나를 만들고 있었다.

내가 이리저리 아내의 속내를 짐작해보려 머리를 굴리는 사이 아내가 힘없는 어조로 입을 연다.

<하지만 내가 당신의 외박에 화가 난다해도 내겐 당신에게 화를 낼 자격이 없겠죠?>

왠지 처량하고 쓸쓸한 듯한 아내의 표정이다. 그런 아내가 왜 또 갑자기 애처롭게 느껴진단 말인가.... 정말 나라는 놈은 어쩔 수 없는 놈인 것인가?

하지만 내 진심이야 어쨌든 입에서 내뱉는 말까지 그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 진심과는 정 반대로 야멸찬 말을 내뱉는다...

<흥, 알긴 아네...>

나의 그런 야멸찬 말투의 말에 상처받은 듯 더욱 어두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아내....

<알아요... 그것도 모르면 바보겠죠...>

금방이라도 눈물을 떨굴 것 같은 아내... 나는 그런 아내를 더이상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래서 황급히 식탁에서 일어났다.

<다 먹었어!>

그러자 아내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숨기려는 듯 얼른 자리에서 일어나며 내가 먹은 밥그릇을 치워보이는 시늉을 한다. 정말 어쩜 부부가 똑같이 시원하게 속마음을 말하지도 못하고 서로 언저리만 뱅뱅 돌며 속마음과는 다른 말만 내뱉고 있었다...

나는 밥을 먹고 침실로 들어가 침대에 벌렁 누워버렸다. 밖에서는 딸그락 거리며 설거지 하는 소리만 들려온다...

내가 그렇게 멍하니 누워서 아내의 동향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는데 갑자기 설거지를 하던 아내의 손이 멈추는 기척이 들려왔다. 순간 나는 나도 모를 어떤 직감에 사로잡혀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조심스럽게 주방이 있는 쪽으로 살짝 몇발자국 갔다. 그곳에서 아내는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철중씨, 안돼요. 이제 우리 이러면 안될 거 같애...>

역시 나의 직감은 적중했다. 아내는 그놈과 통화를 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번은 정말 실수였어... 그땐 내가 미쳤었나봐. 이젠....>

갑자기 아내가 말을 잇지 못하고 멈춘다. 핸드폰 너머의 사내는 아내에게 뭐라고 지껄이고 있는 것일까?

<아아... 제발 철중씨.... 그러면... 안돼요. 집에는 남편이 있어요...>

아내는 사내에게 뭔가 애원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까? 나의 궁금증은 더욱 커져만 갔다...

<제발... 집에서만은 안돼요... 지금은 남편이 있어요. 알았어요. 그럼 내가 나갈께요... 하지만... 아주 잠깐만이에요. 정말... 정말로 할말만 하는 거예요... 그 이상은 안돼요..>

나는 아내의 대화로 대충 짐작했다. 어쩌면 사내는 다짜고짜 우리집, 나와 아내, 그리고 우리 아기만이 있는 보금자리로 쳐들어오겠다고 협박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차피 나한테 다 들킨거 내가 집에 있든말든 우리 집으로 쳐들어오겠다는 무대뽀적인 협박을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내는 그런 그의 무댓뽀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고 있고....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사이 아내가 핸드폰을 끊는 것이 보였고 나는 재빠른 동작으로 조용히 침실로 돌아와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는 깊이 잠이 든 척 연기를 했다.

아내는 조심스럽게 침실로 들어오더니 나를 몇번 조용하게 부른다. 그리곤 내가 잠든 것을 확인하고는 조용히 나갈 채비를 갖추더니 정말로 집을 나선다...

나는 아내가 현관물을 열고 나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저 멍하니 검은 허공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순간 나는 분노해야 하는 것일까 슬퍼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내는 그녀 자신의 다짐과는 달리 그 사내와 몇마디 말만 주고 오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은.... 틀림없이 아내는 그 이상의 것을 사내에게 요구받고 강요당한 끝에 또한번 집에 혼자 남겨둔 남편을 배신하고 남편에게도 허락하지 않는 모든 것들을 외간사내에게 허락하고 말 것이다...

<젠장! 개같은 년!>

나는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욕지기를 느끼며 아내를 향한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그 순간 왜 나의 좆은 또 뻣뻣하게 서있는 것일까...?

내가 나 자신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 띠링하는 문자수신음이 들려왔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문자수신함을 열어보았다. 그곳엔 알 수 없는 발신자로부터 간단한 단어 하나로만 된 문자가 들어와 있었다.

[약수터]

약수터?

이건 무슨 소리일까? 

처음에 어리둥절하던 나는 갑자기 뭔가 퍼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황급히 나는 옷을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고는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주차장으로 가 차를 뺀 다음 우리가 평소 자주 가는 약수터로 향했다. 그곳은 우리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차로 5분 정도의 거리에 있었다.

약수터에 도착한 나는 차를 주차시키고는 여기저기를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는 이상한 마음에 약수터 주변을 더 뒤져보기 시작했다. 약수터 뒷쪽으로는 한 야트막한 야산이 있었는데 시민들이 산책하는 산책로로 이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밤이 되면 사람들은 그리 많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그 야트막한 야산의 산책로로 들어갔다. 특히 이곳을 자주 오르내리던 나는 어느곳이 사람이 많고 어느곳이 사람이 적은지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사람의 이용이 제일로 적은 산책로를 중심으로 주변을 수색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드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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