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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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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은 간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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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날은 간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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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까지의 거리는 별로 멀지 않았다. 나와 은아는 과자 몇 개와 음료수를 샀고, 추가적으로 나는 담배를,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은아는 (이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평소 즐겨 먹는 넙적한 바닐라를 사가지고 나왔다.

“안 춥냐?”

“맛있잖아.”

“감기 걸려도 내 책임 아니다.”

“그러는 오빠야말로 폐암에 걸려도 내 책임 아니다, 뭐.”

“오빠 일찍 죽으라는 소리냐?”

은아의 볼을 살짝 잡아 당겨서 두어 번 흔들어주자 은아는 꺅꺅하고 소리를 지르며 어설프게 쥔 주먹으로 내 어깨며 가슴을 마구 내리쳤다. 헹, 그런 솜주먹 맞아봤자 느낌도 안 난다고. 몇 번 더 흔들어 준 다음에야 난 은아의 볼을 잡고 있었던 손을 놓아주었고, 은아는 빨개진 볼을 두 손으로 감싸고선 투정부리듯이 내게 말했다.

“히잉, 다 큰 처녀 볼을 이런 식으로 잡아당기는 게 어딨냐?”

“60살 먹은 꼬부랑 할머니 되도 나한테는 애야. 억울하면 아버지 졸라서 동생 하나 낳아달라고 해라.”

“그게 가능한 말이냐!”

“아니면 니가 낳아서 기르던가.”

“정말! 동생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어!”

볼에 바람을 잔뜩 불어넣고 고개를 홱 돌린 채 은아는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날 앞질러 가기 시작했다. 저거, 또 삐졌다. 아무튼, 좀 데리고 놀려고 해도 속이 좁아서 재미가 없다니까.
어쨌든, 그렇게 은아는 먼저 집으로 휙 하니 들어가 버렸고 난 남아있는 피로를 털어내기 위해 바람 좀 쐬고 들어가자 싶어서 편의점에서 산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막 한 개피를 뽑아 물고 불을 붙이려는 찰나에, 대문이 열리면서 은아가 울상이 된 얼굴로 나왔다.

“오빠야......”

“왜 안 들어가, 추운데.”

“열쇠, 안 가져왔어?”

“편의점 가는데 무슨 열쇠냐. 왜, 문 잠겼어?”

“엄마가 화장실 가다가 열린 거 보고 잠궜나봐......어떻게 하지? 엄마 아빠 잠들면 절대 안 일어나잖아.”

“......”

그렇다고 나한테 말하면 무슨 뾰족한 수가 생기나. 난 아무 말도 없이 덤덤하게 담배만 빨아 대었고, 은아는 찡그린 얼굴로 한참동안 날 바라보다가 내가 아무 말도 안 하는 것이 답답했는지 내 어깨를 탁 치면서 말했다.

“담배 좀 그만 피우고 빨랑 어떻게 들어갈 건지 생각해봐! 오빠 대학생이잖아!”

“대학생 되면 오밤중에 잠긴 문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라도 생긴다냐? 별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야.”

“이익......”

“이구, 춥다. 지하실에라도 들어가 있자.”

“엑? 나 거기 싫어!”

내 말에 은아는 기겁을 하고 도리질을 쳐 댔다. 어렸을 때, 은아랑 놀다가 내가 장난으로 은아를 지하실에 집어넣고 문을 잠그는 바람에 집안 전체가 발칵 뒤집어졌던 일 때문일 거다. 반나절동안 은아 찾으러 다니다가(그때 난 팔자좋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결국 못 찾은 부모님이 경찰에 신고하려고 할 때, 잠에서 깬 내가 하는 말을 듣고 어머니는 지하실로, 아버지는 창고로 부리나케 달려가셨다. 그리고 돌아온 어머니의 품에는 새카맣게 변한 얼굴로 훌쩍거리는 은아가 안겨 있었고 아버지의 손에는 무식하게 굵다란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정말 개 패듯 맞았지.”

“응? 무슨 말이야?”

“......아니다. 근데 너 진짜 안 들어 갈 거야? 추울 텐데.”

“절.대.로. 안 들어가.”

“흐음......요새 이 근처에 나쁜 놈들 많이 나온다는데. 이런 오밤중에 여고생 혼자서 잠옷 바람으로 오들오들 떨고 있는 거 보면 걔들이 어떤 말을 할까? 나 같으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바보!”

은아의 발이 내 정강이를 정확하게 걷어찼다. 아무리 18살에 여자라지만 발길질은 무시 못 할 수준이었다. 다리를 붙잡고 폴짝폴짝 뛰는 날 쌤통이라는 듯한 눈빛으로 탁 쏘아보더니, 은아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지하실 쪽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크으, 갈 거면 그냥 곱게 갈 것이지 남의 다리는 왜 걷어차고 난리야.


지하실은 변한 게 없었다. 한쪽에선 보일러가 우웅 소리를 내며 돌아가고 있었고 그 옆에는 잡동사니가 먼지를 뽀얗게 덮어쓴 채 가득 산을 이루고 있었다. 보일러의 반대쪽 구석은 나무판을 몇 겹 덧대어 만든 작은 방 같은 곳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지하실 출입을 전혀 하지 않았던 은아는 당연히 모르겠지만, 나야 고딩때는 이곳을 주 무대삼아 부모님 몰래 친구들이랑 술판을 벌이면서 놀기도 했기에 그다지 낯설지는 않았다. 산만하게 두리번거리는 은아를 지나쳐 익숙한 동작으로 문 위를 더듬어 열쇠를 찾아내고선 문을 열고는 안으로 들어가자, 은아도 머뭇머뭇하면서 따라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대학생 되면서 자주 오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내 아지트인지라 청소는 꼬박꼬박 하는 탓에 별로 지저분하진 않았다. 한쪽에 서 있던 오래된 기름 난로를 꺼내 기름을 확인하고는 심지를 돌려 라이터로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옆 서랍장 위에 올려져 있던 커다란 비닐봉투를 꺼내 매듭을 풀고선 그 안에서 담요를 꺼내었다. 그걸 한쪽에 펼쳐놓은 간이침대에 깔아놓자 은아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대단하네......언제 이런 걸 다 준비했어?”

“북한이 언제 밀고 내려올지 모르는데 이정도야 기본이지. 커피 마실래?”

“커피도 있어? 헤에, 별 게 다 있네.”

“철저한 준비성이라고 해 둬라. 마실 거?”

“으응, 됐어.”
서랍장의 맨 아랫칸을 열어 캔커피 하나를 꺼내 땄다. 이건 저번에 우리 집에서 할머니 칠순잔치 했을 적에, 몇 박스 사다 놓은 걸 내가 한 박스 정도 슬쩍 해 놓은 것이다. 뭐, 그 외에도 라면에다 쌀도 있고 어느 정도 생필품들은 거의 다 갖춰져 있기 때문에 잠깐 방황했던 고딩때는 부모님 몰래 여기서 며칠동안 생활하기도 했었다. 결국 들켜서 다 쫑났긴 했지만.

“지금 몇 시쯤 됐을까?”

“3시 반.”

“어, 어떻게 알아?”

“네 뒤에 시계 있잖아.”

뒤를 돌아 본 은아의 눈의 휘둥그레진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생필품은 거의 다 갖춰져 있다고. 간이침대의 한켠에 앉아서 캔커피를 한 모금 마시는 동인 은아는 잽싸게 신발을 벗고 침대로 올라가더니 담요 속에 쏙 파묻혀 버렸다. 누구 닮아서 추운 걸 저렇게 싫어하는지. 그러면서도 아이스크림은 좋아하는 게 신기하단 말야.

“우웅, 따뜻해.”

“피곤하면 자. 적당한 시간에 깨워 줄 테니까.”

“......이상한 짓 하면 안돼.”

“하라고 고사를 지내도 안한다.”

“헤헷. 그럼 나 잔다.”

눈 위만 쏙 내밀고 잠을 청하는 은아를 보면서 난 피식 웃음을 지었다. 어릴 땐 혼자서 죽어도 못 잔다고 맨날 내 방으로 쳐들어오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그러고 보니 어릴 때 종종 잠 안온다고 보챌 때도 있었지.

“잠 안오네......”

그럴 때면 은아는 꼭 나한테 뭘 해달라고 했다. 그래야만 잠이 잘 온다나. 그게 뭐냐면......

“굿나잇 키스, 오랜만에 한 번 받아보고 싶네.”

“......애냐?”

“응, 애야.”

“그냥 자 임마. 다 큰 처녀가 그렇게 함부로 입술 남발하고 다니면 안돼.”

“오빠 동생인데 뭐 어떠냐. 응? 해주라아.”

꼭 잠이 안 올때가 아니라도 은아는 수시로 내 입술을 훔치는 게 일이었다. 제 딴에는 남매간의 애정표현이라고 하고 또 당하는 나 역시 어릴 적부터 하도 많이 해 봐서 별다른 감정은 없지만, 문제는 남들의 시선이란 말이다. 남매간의 키스라니, 당장 비난의 눈초리를 받을 게 뻔한 일이었다. 은아도 나이가 들면서 자제하고는 있지만, 사람들 눈만 벗어나면 바고 쪽쪽 해 버리니, 별다른 대안도 없이 그저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는.
별 수 없나. 저 녀석 안 해 준다고 하면 밤 새 궁시렁 거릴테고(이전번에도 해 달라는 거 안 해 줬다가 일주일을 삐져서 곤란했던 적이 있다), 그거 풀려면 가난한 대학생 지갑 통째로 거덜날 게 눈에 선하다. 난 캔커피를 난로위에 놓아두고 자리를 옮겨 은아의 허리 옆에 앉았다. 그리고 몸을 숙여 담요 밖으로 내민 은아의 입술에 조용히 내 입을 맞추었다.

“음......”

엇쭈? 또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콧소리 내도 이 오빠는 아무런 감정이 없단다. 알겠냐?
라고 생각한 찰나에, 내 입술을 비집고 무언가가 불쑥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게 은아의 혀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난 당황해서 고개를 뒤로 뺄려고 했지만 은아의 손이 내 머릴 잡고 끌어당기는 바람에 그러지도 못하고 은아의 혀를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걸 밀어내려고 노력은 했지만 은아는 그것이 자길 받아들이는 거라고 착각한 줄 알고 더욱 더 격력하게 내 입속을 휘젓고 다녔다.
한참을 붙어있다가, 겨우 은아의 손을 풀고 고개를 잡아 뺀 뒤에 거칠게 숨부터 몰아쉬었다. 은아는 뭐가 그렇게 좋은지 살짝 상기된 얼굴을 하고선 배시시 웃고 있었고, 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한참을 머뭇머뭇거렸다.

“커피맛 나네.”

“당연하잖아! 방금 전까지 커피 마시고 있었으니까.”

“응, 그럼 나는? 난 무슨 맛 났어?”

“너야 당연히 바닐라......이게 아니잖아!”

“왜 또 흥분하고 그래? 이렇게 예쁘고 귀여운 여동생의 프렌치 키스를 받을 수 있는 오빠가 흔한 줄 알어? 감사히 여기라구.”

“너 임마, 장난도 정도가 지나치면 나쁜 거야. 알아?”

“난 장난 아니네요. 오빠 좋아하는 걸.”

“그래, 나도 너 좋아해. 네 말대로 예쁘고 귀엽고 깜찍하고 애교 많고 순수하고 앙증맞은 동생을 싫어할 오빠가 어딨겠냐. 그렇지만 이건 좀 심해.”

“와......그 많은 걸 지금 생각해 낸 거야? 오빠 머리 잘 돌아가네.”

“그걸 이제 알았......크악! 이야기 돌리지 마!”

하아, 하아. 이러다 내가 제 풀에 죽지. 난 숨을 몰아쉬며 은아를 노려보았고, 은아도 장난스럽게 웃던 표정을 조금 누그러뜨리더니 조금은 진지해진 모습으로 담요를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저기 말야, 여동생이 오빠를 좋아하면 안돼는 걸까?”

“안 될 게 뭐 있냐. 오빠 좋아한다는 데 누가 말려.”

“남매로서가 아니라, 이성으로서 말야.”

......난 할 말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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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도사 소라 야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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