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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수수밭 3부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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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가 한풀꺾인것 같아도 한낮의 더위는 아직도 맹위를 떨쳤다.
열차에서 내려서 시골집으로 가는데 해가 떠있는 동안은 매우 더웠고, 더구나 새벽까지 있는힘을 다 쏟아서 미순엄마의 보지를 유린하느라 탈진했으므로 걸음이 잘 걸리지 않았다.
새벽까지 파고들며 미순엄마는 색을 밝혔고, 그 요구에 젊은 육체였지만 한계에 다달아 힘이 딸릴 정도였다.
평소에는 역에서 집까지 두어시간이면 여유있게 갈수 있었으나 오늘은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고 하느라 세시간이 넘었다.
여름날의 긴긴 해가 서산마루에 걸려있을때 화천동이 보이는 마지막 고개마루에 다달았다.
효원이 고개마루에 있는 널직한 바위에 앉아 다리쉼을 하며, 화천동을 바라보다 눈을 이리저리 돌려 고향산천을 구경 하였다.
늘 느끼는 것이지만 겉으로는 너무나 평화로운 곳이다.
00부(府)에 가 있을때도 언제나 마음속에 떠 오르는 고향산천의 모습이 오늘은 눈 앞에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곳 저곳으로 눈을 돌리다 고개 내리막길을 내려다 보니 치마자락을 날리며 길을 재촉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에서 화천동은 보이지만, 도착하려면 아직도 상당한 거리를 가야 했으므로 혼자서 길을 가는것보다 길동무해서 가는것이 더 좋아 효원은 자리에서 털고 일어나 같이 가기위해 빠른걸음으로 고개를 내려갔다.
고개아래로 내려오니 해가 떨어진후라 시시각각으로 어둠이 짙어졌다.
더구나 짙은 소나무숲속으로 나있는 오솔길이라 다른곳 보다 더 어둡다.
효원은 발걸음을 재촉해 앞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릴정도로 거리를 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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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가던 사람은 뒤에서 발자국소리가 들려오니 발을 더욱 재게 놀려 종종걸음을 친다.
아마도 해는 넘어가고 어두운 숲속이라 무서움이 왈칵 드는 마음일 것이다.
굽어진 길을 돌아서 나오니 앞길은 평탄하고 조금만 지나면 소나무숲을 지나 논들이 펼쳐져있는 들판을 가로질러 가게되어 지나온 길보다 훨씬 환해졌다.
효원이 앞에가는 사람을 보니,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가끔씩은 보며 이쁘게 생겼다고 느꼈던 동네에서 얌전하기로 소문난 살구나무집의 세째딸 연이였다.
"어! 연이아가씨 였구나! 아가씨 같이가요."
어두워서 무섭고, 또 뒤에 누군지 모르지만 계속 따라오니 무서움에 뒤를 돌아다 보지도 못하고 등골이 오싹하던 터에 갑자기 목소리
가 들리니 깜짝놀라 달음박질를 치려다 이름을 부르는 아는 목소리라 제자리에 우뚝서며 한숨을 내 쉬었다.
"흐으휴!!!!"
효원이 가까이 다가오며
"무슨 아가씨 걸음이 그렇게 빨라요? 내가 못 쫓아 오겠네."
"흐휴! 누구 간 떨어진 꼴을 보려고......."
말을 하다가 효원의 준수한 얼굴을 보고 이내 고개를 숙이며 얼굴을 붉힌다.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유교적인 습관이 아직도 확고부동한 시절이라 처녀총각이 만나 같이 길을 걷고 이야기 하는것은 동네에 큰 소문이 날 일이었다.
때문에 연이도 효원을 잘 알고 있었고, 효원도 연이를 알고 있었지만 서로가 성장한 후에는 말을 하지도 않았고, 할 기회도 없었다.
또 여긴 00부(府)의 여학교에 다니는 학생들과도 달라, 효원도 동네에 와서는 친구들과 여자들 이야기는 할수 있어도, 여자들과 직접적인 대면과 대화는 금기사항으로 여기고 있었다.
길도 같이 걸어서는 안되고 남자와 여자가 떨어져서 걸어야 될 정도로 보수적인 마을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연이는 효원과 같이 가게 되었다.
또 연이가 효원의 얼굴을 보고 붉히는 이유가 있었다.
얼마전 밤중에 오줌이 마려워 작은방에서 나와 오줌을 누고 방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안방에서 부모님들의 두분 말소리가 들려오는데 자기의 이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부모님의 이야기를 엿듣는것이 잘못이라는걸 알지만 자기의 이름이 나오는지라 고양이 걸음으로 안방툇마루끝에 걸터앉아 숨소리를 죽이고 들었다.
"여보! 연이 아버지, 이제 연이도 이번 가실을 끝내고 시집을 보내야지요."
"응! 그래야겠지!"
"여보!!"
"응!"
"연이는 제 언니들 처럼 멀리 보내지 말고 가까운데로 보냅시다."
연이의 언니들은 먼곳으로 시집을 보내 아직도 근친을 오지 못한것을 두고 늘 서운하게 생각하는 어머니의 말씀이다.
"글쎄~~~~.....가까운 데에 좋은 혼처가 있을까?"
"너무 멀리 새끼들을 보내 놓으니 보고 싶어도 볼수가 있을까!......뭣을 주고 싶어도 줄수가 있을까!....너무 서운 합디다."  
연이의 큰 언니는 사년전에 이곳에서 육십여리 떨어진 곳으로 울면서 가마타고 시집간후로 소식만 간간히 인편으로 들을뿐 한번도 오지 못했고, 둘째언니는 이태전에 큰언니보다 더 멀리 시집을 가 소식도 들을수 없는것을  한탄해서 어머니가 말한다.
"여보!여보! 저~기 저 윗뜸 김 서방네 큰 아들은 어쩔까?"
"응? 김서방 큰 아들?....."
"아따....저 00에가서 공부한다고 하는 효원이 말이요."  
"으응!! 애가 똑똑하고 야물기는 하는데......집안이 별로라서......."
"또또또...양반타령... .아! 집안도 농사는 그래도 이 화천동에서는 중농이라 할만하고, 김서방도 영리하고 댁네도 얌전하고, 살림 잘하고, 아들은 영리해 학교도 남보다 높은곳에 다니고, 뭐가 빠지는 것 없네. 다만 양반이 아니란것이 마음에 걸리지만......."
"글쎄~!!...."
"그러지 말고 가실(가을추수)을 하고 한번 매파나 보내 봅시다."
"음!!알았어! 자!자!이리와 한번 하게."
"아이참! 이 양반이 아직 애기들 안 잘텐데......"
"걱정마 벌써 삼경이나 됐는데.....다들 잠 잘거야."
"아이!아이! 이이좀 봐! 거기가 어디라고 빨아. 아이이!....."
"쪽!쪽!쪽!쪼~옥!쪽!"
남녀관계는 확실히 모르지만 부모님이 무엇을 하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기 때문에 연이는 더 이상 듣지 못하고 어둠속에서도 얼굴을 붉히고 자기방으로 소리없이 돌아왔었다.
그런데, 효원을 이곳에서 만났으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 방망이질을 하니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마을처자들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효원인데다 부모님께서 가을에 매파를 보낸다고 한 뒤에 마음속에는 벌써 효원을 내 사람으로 여겨 사모하는 마음뿐인데, 여기에서  마주쳤으니............
연이는 어두어져서 자기의 붉어진 얼굴을 감추어 주는것이 마음 편했다.
"어쩌다 이렇게 늦게 돌아가게 되었어요?"
효원의 물음에 조그마한 소리로,
"아버님 심부름으로 재 넘이 마을 갔다가........"
"아니? 상준이는 뭘 하고요."
상원이는 연이의 두 동생중 큰 동생이다.
막내 영준이는 아직 꼬마지만 상준이는 열 서너살쯤 되어 아버지 심부름을 도맡아서 했는데 오늘은 아파서 자기가 대신 심부름을 하게 된 것이다.
"상준이는 아파서요."
"아! 그래요."
"길을 일찍 나서지 않구요."
"일찍 나섰어도 어두워 졌어요."
아마 상원이가 심부름을 했으면 어두워지기 전에 집에 돌아갔을텐데 아무래도 여자걸음이라 시간이 오래 걸려 어두워진 것이다.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없이 길을 재촉했다.
이제 산길은 끝나고 냇가를 따라 올라가다 동네로 들어가는곳까지는 넓다란 들판이 펼쳐져 있다.
어둠속을 걸어가는 두사람의 인적에 따라 논에서 울어대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지고 있었다.
효원의 뒤를 두어걸음 뒤 따라가던 연이가 갑자기 '아'하며 쓰러지려 한다.
돌부리를 발끝으로 찬것이다.
앞서 가던 효원이 소리를 듣고 뒤돌아서며 쓰러지려는 연이를 붙잡아주자 온 몸이 효원에게 안기게 되었다.
효원은 연이를 안자 상큼한 처녀의 내음을 맡았다.
농익은 아줌마들의 냄새가 아닌 풋풋한 처녀의 내음 말이다.
자기도 모르게 손으로 연이의 얼굴을 바쳐들고 연이의 입술에 자기의 입을 대고 빨았다.
연이는 갑자기 효원에게 입술을 빨리게 되자 처음에는 손으로 효원의 가슴을 밀어 댔으나, 효원이 더욱 끌어안고 빠는 바람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입을 열어주고 말았다.
입술이 열리자 매끄러운 혀가 들어와 입안 이곳 저곳을 휘젓다가 빠져나가며 자기의 혀까지 빨아간다.
빠져나간 혀는 돌아올줄 모르고 효원의 입속에서 이리저리 굴러 다녔다.
두 사람의 혀가 서로 엉기기도 하고 이쪽 입속으로 왔다가 다시 저쪽입속으로 다녔다.
생전 처음 입술을 남자에게 준 그 느낌은 말로 형언할수가 없었다.
등골이 찌르르하는 느낌과 동시에 눈앞이 하애지는 것 같았으며, 몸이 흐느적 거려 중심을 잡을수가 없었다.
꼭 껴안고 혀가 부르트도록 빨던 효원이 입술을 떼고서 말한다.
'아가씨 아가씨' 하며 깍듯이 붙이던 존댓말을 아예 없에고 반말이다.
"연아! 네가 좋았다! 말은 못했지만 아주아주 전부터......."
"............."
연이는 아직도 정신이 없다.
황홀한 느낌 뿐이다.
아직 효원이 안고 있는것도 모를 정도다.
"너무나 좋아한다! 연이야..."
두번째의 효원의 말에 퍼득 정신을 차린 연이는 자기가 효원의 품에 안겨있는 것을 보고 황급히 떨어져 나왔다.
두 사람은 다시 걸었다.
효원이 걷다가 연이의 손을 잡아온다.
효원에게 손을 붙잡힌 연이는 손을 빼내려고 하지도 않고 나란히 걸어갔다.
동네가 가까와져 동네개들이 짖는소리가 요란하다.
효원은 연이의 손을 놓고 다시한번 껴안는데 연이가 가만히 떠민다.
"연이야! 내일밤 오경에 물레방아간으로 와. 알았지?"
"........."
"왜 대답이 없어. 나와야 한다."
그 때에 동네에서 등불 하나가 움직이며 이쪽으로 다가 온다.
"도련님! 나 먼저....."
연이가 말을 하며 돌아선다.
효원도 짐작을 했다.
연이 부모가 어두워지도록 연이가 돌아오지 않자 발등거리를 들고 마중 나오고 있는 것이다.
"알았어! 먼저가 나는 한참 뒤에  들어갈테니까.....내일밤  나와야 된다..."
그 순간 벌써 연이는 저 만큼 걸어가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저쪽 어둠속에서 말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연이냐?"
"예!"
"너무 늦었구나. 어서 집에 가자."
"예!"
효원은 그 자리에 서서 발등거리 등불이 동네로 들어가 사라질때까지 서있다 자기집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집앞에 당도하여 삽짝문을 열고 들어서며 인사를 한다.
"아버지 저 왔습니다."
"응? 효원이냐."
"예!"
"어서 들어 오너라."
"예"
효원의 집이 갑자기 부산스러워지며 이야기 소리가 도란도란 밤이 깊어 가도록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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