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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1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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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소라

흔적 19부


해변의 백사장을 한없이 달구던 햇빛도 수많은 사람들을 받아들였던 바닷가도 이내 어 두움속에 사라질무렵 재민일행은 바닷가 한켠 작은 파라솔에 앉아있었다..

바닷가 곳곳에서 술을 마시는 젊은이들의 소근거림과 간간히 들려오는 취중 노래소리 로 그렇게 해변의 밤은 깊어가고 있었다..

민박집을 나온 일행은 저녁을 먹은후 해변 술집을 찾았다..

"야~~~~밤이되니 시원하네..낮엔 그럽게 뜨겁게 백사장을 달구더니....

참 좋다...이렇 게 바다소리..바다내음과 함께 좋아하는 사람들과 술 한잔 할수 있다는게....

그치 재 민아..??"

해변의 밤에 취한듯 연재가 재민에게 말을 건넨다..

"응..정말 좋다.."

"우리 건배할까...우리의 아름다운 이 첫밤을 위해서.."

"네..."

"아름다운 이밤을 위하여~~~~"

"위하여~~~"


잔이 부딪힌다...그들의 웃음소리로..

각자 꺼내어 놓는 이야기로 그들은 그밤을 그렇 게 맘껏 즐겼다..지금 이순간만은 그들에겐 슬픔..고민따윈 존재하지 않았다...

마음은 한없이 평온했고 모두가 행복한 마음 가득한 밤이었다... 자연에서 마시는 술이었기 때문인지 평상시보다 많은 술을 마신 후였는데도 재민은 취 기를 느낄 수가 없었다..

한동안 서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다 재민이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사이 자리엔 연주만 이 앉아있었다...

연주는 이젠 어두워져 보이지도 않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재민이 돌아온것도 모르는듯 연주는 한동안 그렇게 바다를 바라봤다...

그리곤 무심결 에 고개를 돌리다 재민을 발견한다.

"어머..재민이 와있었구나.."

"누나가 바다에 취한것 같아 그냥 있었어요..."

"후훗.."

"연재와 지영이는요??"

"응..잠시 바닷가좀 거닐고 온다고..."

"네...."

"참좋다...바람은 서늘하고 귓가엔 파도소리 가득하고..."

"네..."

둘은 그렇게 바다를 바라봤다..

어둠으로 바다는 보이진 않았지만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느끼며 자연속에 동화되어갔다..

무엇보다도 재민은 이곳 이시간에 연주가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재민아..."

"네..."

"우리도 같이 바닷가좀 거닐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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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바닷가를 거니는 연인들사이로 재민과 연주도 그렇게 거닐고 있었다...

연주는 신을 벗은 후 맨발로 밀려오는 바닷물을 느끼며 거닐었다.

바람이 불면 흩날리는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바닷내음을 가슴가득 담으려는듯 크게 심호흡을 하곤 했다...

생각해보면 참 바쁘게 살아온 시간이었다...

연재를 데리고 어린나이에 사회에 뛰어들 어 앞만보며 살아왔다..

그로인해 그나이 또래에 느끼는 감정이나 놀이한번 제대로 해 보지 못할만큼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해온 시간들이었다..

여자나이 스물여덟..결코 적지 않은 나이였기에 연주 또한 가끔씩 해결할 수 없는 외 로움을 느껴야했고 오늘 밤바다를 바라보는 연주의 감성은 그 외로움으로 연주를 끌어 들였다...


재민은 바닷가를 거니는 연주의 작은 몸짓 하나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듯 연주에게서 눈을 떼지못하고 있었다..

착각일까...연주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슬픔은....

무엇인가 생각에 잠긴 연주의 얼굴에서 슬픔을 느끼는 순간 재민의 마음은 아려왔다 ...

하지만 그렇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오랜동안을 이렇게 그녀 곁에서 혼자 바라보기만 해야 할지도 몰랐다 ....


"우리 여기 잠깐 앉을까??"

얼마나 걸어온 것일까 ...해변의 한켠에서 연주가 긴 침묵을 깨고 말을 꺼냈다...

여름이었지만 밤바다의 바람이 조금 거세게 불고 있었다..

"이거 입으세요.."

재민의 자신의 셔츠를 연주에게 건넨다..

"괜찮아.."

"밤바람이 조금 차요..걸치세요..."

재민이 제차 건네자 연주는 셔츠를 받아들었다..

"고마워.."

둘은 그렇게 해변에 앉았다..

"몇일 사이 얼굴이 많이 상했어...무슨일 있었니?"

"....."

"재민아.."

"별일 없었어요..그냥 친구들하고 몇일동안 술을 좀 많이 마셔서 그런가봐요..."

"연재말론 몇일동안 연락도 안되고 집에도 안들어온거 같다던데??"

"친구집에서 몇일동안 지냈어요..."

"그래...그렇구나..."

"....."

"내가 중학교 다닐때였던거같아...

왜 학교 초기에 교생선생님이 오시곤 했잖아.."

"네.."

"우리반엔 젊고 잘생긴 오빠같은 교생선생님이 오셨었어..

예민했던 시절 누난 그 선생 님을 좋아한적이 있었어..

매일 아침 선생님 자리 꽃을 꼿아두고 선생님 자리를 청소하 고..그게 내가 선생님께 보내는 사랑의 전부였었어..

간혹 선생님이 내게 말을 건내면 난 말한마디 못한채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지..

그렇게 홀로 그분을 좋아하면서 난 행복 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곧 헤어져야한다는 사실에 슬퍼하기도 했었어..

아직도 가끔 날 웃음짓게 하는 그날..

그날은 선생님이 내일이면 학교를 떠나시던 날이었어..

난 홀로 걸어가시는 선생님께 정성껏 마련한 선물을 건넸어...


그분은 의외였는지 내 선물을 받으면서도 많이 놀라셨어...난 울면서 선생님께 말했어..

'선생님 보고싶을거 에요..아주많이..'..

그러자 선생님은 넓은 가슴으로 날 안아주며 말씀하셨어...

'나도 네가 아주 오랫동안 생각날거야...건강하렴'....

비록 아주 어린시절 짧은 시간이었지 만 십년이 지나버린 지금도 그때 그 생각에 웃음지을 수 있다는것에 감사하단다."

"어떤분인지 행복한 분이네요..."

재민은 왜 갑자기 연주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지 의아했다..

재민이 그런 생각을 할 무렵 다시금 연주의 말이 이어졌다..

"재민이는 ....그런 기억없니??...아님...요즘이라도..."

재민은 갑작스런 연주의 물음에 그제서야 연주가 무슨 의도로 이런 이야기를 꺼낸 것 인지를 알 수 있었다...

재민은 아무말없이 바다를 바라봤다...

막상 이야기를 꺼내려하니 그동안 써왔던 수많 은 말들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저앞 보이는 바다보다도 더욱 머릿속은 깜깜하기만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재민의 손엔 땀이 베이기 시작했다..


연주 또한 막상 생각끝에 이야기를 꺼내면서도 조심스러울수 밖에 없었다..

재민이 이 야기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걱정스러웠다.

단지 지금은 모든것이 연주자신의 추측이었기 에 재민의 입으로 그것을 확인한 후에야 다시 말을 꺼낼수 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연주는 재민의 입에서 어떤말이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재민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한 꼬마가 있었어요...

엄마와 단둘이 살았었는데 어느날 아침 엄마는 다시는 꼬마의 이름을 불러줄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지요..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꼬마는 친구집을 가 게됐어요..그곳에서 엄마와 너무도 똑같은 친구의 엄마를 보게됐죠..

그리곤 그날이후 꼬마는 그 친구 집앞을 서성거렸어요..다

행스럽게도 그 친구의 엄마는 꼬마를 아주 다 정하게 대해주었어요..

꼬마는 한없이 행복했지만 밤이면 다시 혼자가 될 수 밖에 없는 자신의 현실에 슬퍼했어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꼬마는 어느 순간부터 친구 엄마를 자신의 엄마로 여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그분께 언젠가는 꼭 엄마라는 말을 할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대요..지금 이순간에도..."

"재민아...."

말을하는 재민의 목소리는 매우 떨고 있었다..

그런 재민의 손을 연주는 가만히 잡아주었다...

이윽고 바다를 바라보던 재민이 연주를 바라보았다..

연주의 두눈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두눈이 교차하는 짧은 시간 재민은 무언가 다짐한듯 다시 입을 열었다...

"오늘이 아니면 다신 이런 이야기 할 기회가 없을거란 생각이 들어요..그래서 오늘 모 든 이야길 다 하고 싶어요...

제 이야기 끝까지 들어주실수 있으세요??"

재민의 말에 연주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재민의 가슴은 크게 뛰기 시작했고 드디어 재민은 마음속 말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수없이 많이 지금 내감정을 부인하려 했어요..

그냥 한때 생겨나는 한사람에 대한 막연한 연정이려니 생각하고 싶어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감정은 더 욱 짙어만 가고 이제는 그감정을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나 힘이들어요..

혼자가 된후 처 음으로 누나에게서 따뜻함을 느끼던 그날이후 누나의 작은 행동하나하나에도 제 감정 은 수없이 변화했고 잠시도 누나의 생각에서 벗어날수가 없었어요..

이젠 더이상 부인 하고 싶지 않아요.."

한순간 재민이 연주를 바라본다...

"사랑해요...누나..."

'사랑해요....사랑해요....'

재민의 입에서 나온말은 한동안 연주의 귓가를 맴돌았다..

몇일동안 막연히 느껴온 것이 재민의 입을통해 사실로 증명된지금 연주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설마 재민이 이런말을 자신에게 할줄은 몰랐기에 더욱 당황스러웠고 이상황에서 어떤 말이 재민과 연주를 위해 좋은 말일지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말이든 해 야만 했다...

"재민아..."

"...."

"재민이가 날 좋아한다니 누나도 기뻐..고맙고..

재민이 얼마나 어렵게 이런 이야기를 꺼낸건지 알기에 더욱 그래..하지만 재민아 ..

네가 나로 인해 마음아파하고 쉽게 자신 의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건 스스로 어떠한 벽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거야..

무엇보다도 가장 어려움을 느낀건 너와 나의 나이겠지...

그 벽은 너도 그렇겠지만 나에겐 넘기 힘 든 벽이야...

그리고 누난 재민을 항상 가까이서 지켜볼수 있는 사람으로 남고 싶어..

누난 오늘 이후로도 재민이 나로 인해 아파하거나 힘들어하는걸 보고 싶지 않아...

만 일 그렇다면 누나도 힘이들거야...

그 감정을 지금 당장 부인하긴 힘들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재민에게 좋은 사람이 나타나면 언젠가 웃으면서 지금의 일을 추억으로 이야기 할수도 있을거야...

누나가 그랬던 것처럼...."

"누나..."

"재민아 ..누난 재민이가 앞으로도 오랜 시간을 누나곁에서 좋은 사람으로 남았으면 좋겠어..

솔직히 누난 지금 참 조심스럽단다..내 말 한마디로 인해 재민이 상처를 받을 까봐 그래서 내 곁에서 떠나갈까봐 겁이나..."


"....."

"재민아..약속해줄래??..

오늘 이후로 바보처럼 혼자 마음 아파하지 않기로...

대신 누 나가 보고싶으면 언제든지 누나가 갈께..그렇게 해주지 않을래??"

"누나...."

얼마나 많은 시간을 그녀에게 고백하길 원했던가...

아직 채 못다한 말이 너무나도 많은데 그녀는 재민에게 동생으로 남기를 원하고 있다 ...

가슴한켠이 무너지는듯 너무도 마음이 아팠다...언제부터인가 재민의 눈에선 눈물 이 흐르고 있었다.

"하고픈 말이 너무나 많았는데...이상해요...

지금은 아무말도 떠오르지 않아요..

누나 말대로 시간이 지나면 사라질 감정이라면 그때까지만이라도 사랑하는맘 간직하면 안될 까요??...

억지로 마음까지 비울자신이 없어요...그래도 될까요??"

"재민아...."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더 자신을 좋아하고 있는 재민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에 연주 는 지금 어떤말로든 재민을 감싸주고 싶었다...

"그래..

재민이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을 억지로 버리라고 말하지 않을게..

그 감정은 재민에겐 소중한 것일테니까...

하지만 누난 행여나 재민이가 그 감정으로 인해 힘들어 할까 그게 걱정돼..

아까 그랬지 ..누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재민의 마음이 수시로 변 한다고...

그건 지금 재민의 모든 생각이 누나에게만 치우쳐서 그래...

항상 그렇게 누 나생각만 하면서 지낼거야??..

아직 재민이는 해야할 공부도 있잖아...

자신의 감정에 편안해지려 조금만 노력해봐...

분명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거야..

누나도 오늘 재민에게 받은 마음 고맙게 간직할게...."

"고마워요...누나..."

재민이 바라본 연주의 얼굴에선 한없이 부드러운 미소가 피어올랐다...

연주를 바라보 는 재민도 그제서야 웃음지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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