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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의 두자매 이야기 LA의 두자매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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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x년 어느 여름날.
"저~ 죄송하지만 20달러만 빌려주실래요"
옆 사무실에 일하는 노처녀 미스 정이 조심스럽게 찾아와 말을 건넸다. 평소 이름 정도만 알고 지내던 터라 처음엔 의아스러웠는데 업무가 너무 밀려서 밖에 나가서 점심식사할 시간이 없어서 음식을 배달시켰는데 지갑이 비었다는 것이다.
때마침 동료들이 모두 밖으로 나가고 없어서 우리 사무실까지 찾아왔노라는 설명에 대충 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30대 초반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씬한 몸매를 지닌 미스 정은 탤런트 채시라와 흡사한 미모를 지녔고 비교적 쾌활한 성격이어서 우리 사무실은 물론이고 빌딩내 입주해 있는 한국계 회사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그녀가 지나칠때마다 남자들이 군침을 흘렸던 것은 말할 나위가 없다.
당시 나는 다른 회사에서 스카웃되어 온지 한달이 채 지나지 않아서 그녀와는 복도에서 마주칠때 눈인사를 나눴을 뿐 말한마디 해 본적이 없었다.
그녀와의 관계는 그렇케 20달러의 채무로 시작됐다.
다음날 아침 막 출근해서 자리를 정리하고 있는데 "아직 커피 안했죠. 이거 고마워서요. 참 오늘 점심 약속 없으시면 저랑 하실래요?"라며 미스 정은 김이 무럭무럭 나는 커피잔과 20달러를 내 책상에 내려놓고는 휭하니 나갔다. 이미 선약이 있다는 내말은 듣지도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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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가져온 커피를 음미하면서 순간적인 갈등을 느꼈다. 아무래도 거래처 사람들과의 밋밋한 점심보다는 그녀와의 점심이 산뜻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감 때문에. 그러나 막 회사를 옮겨온 내 입장을 생각하니 '여자'보다는 '실적'이 우선이라는 현실에 굴복할 수 밖에 없었다.
전화로 점심을 같이 못하겠다고 통지할까 하다가 그녀의 얼굴을 한번 더 보자는 야수의 마음으로 그녀의 사무실을 찾았다.
"미스 정, 커피 고마웠어요. 그런데 어떻하죠. 점심때 선약이 있어서요. 다음에 한번 더 기회를 줬으면 하는데..."
"이부장님, 기회란 단 한번이란 것 아시죠."라며 활짝 웃는 그녀의 눈빛을 보는 순간 그녀와 무엇인가 이뤄질 수 있을 것이란 직감이 들었다. 그래서 "원수를 그런식으로 갚으면 백마 탄 왕자가 노크하다가 말고 도망가 버릴껄"이라고 수작을 걸었다.
생면부지의 사이에서 하룻만에 농담을 나누는 관계로 급진전하게 된 것이다. 주중에는 업무에 지장이 있으니 금요일 저녁에 내가 한턱을 내는 것으로 데이트 약속을 했다.
주말을 기다리는 설레임 탓인지 회사일이 잘 풀려나갔고 그덕분에 역시 이부장이라는 사장의 칭찬을 받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약속된 금요일 퇴근시간.
우리는 모처럼 바닷바람을 쐐자며 LA서 한시간 남짓 떨어진 말리브해변으로 갔다. 이미 방문해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산타모니카에서 해안선을 따라 쭉 뻗은 1번하이웨이는 LA의 연인들이 드라이브하는 최고의 장소로 꼽는 곳이다.
특히 말리부지역은 실베스터 스탤런, 자니 카슨 등 인기스타들의 저택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어 밤이면 아베크족들이 모여드는 탓에 유명 레스토랑들이 성업중이다.
해변에 소재한 레스토랑에 앉은 우리는 유리창 밖으로 몰아치는 파도소리와 넘실대는 남빛 바다물결 그리고 그 물결위로 비춰지는 달빛에 어우러져 포도주 한병을 비우면서 서로가 30여년동안 지녀온 지난 발자취들을 고백하는 시간을 나눴다.
고된 유학생활 끝에 어렵사리 MBA를 받았던 것과 영주권을 만들어준다는 미국회사에 취직해서 겪었던 인종차별의 설움, 그 때문에 최근 한국회사로 자리를 옮겼다는 것 등등을 이야기 하던 나는 왜 그랬는지 기혼자란 사실을 밝혔다. 처음엔 결혼한 사실을 숨기려 했으나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아서 6개월전 결혼을 했고 와이프는 한국에서 이민수속을 하느라 기다리고 있노라고 실토했다.
그러자 그녀 역시 절대 비밀이라면서 자신은 노처녀가 아니라 이혼녀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녀의 말을 간추리면 3년전 남편이 LA지사로 발령나서 LA로 이주했었는데 우연히 한인타운의 한 식당에서 만난 대학동창과의 관계를 남편이 의심했고 그때문에 매일밤 구타와 함께 성적폭행을 견디다 못해 헤어졌다는 것이다.
지금은 5살난 딸과 유학와 있는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는데 이혼녀란 말을 듣는게 자존심 상해서 아무말을 안했더니 회사에서는 노처녀로 알고 있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식당을 나온 우리는 쓰린 마음을 달래려 바닷가 모래사장을 걸었다.
철석거리면서 검푸른 폭도처럼 우르르 달려들다 하얀 포말로 부서지는 파도를 말없이 지켜보는 그녀의 얼굴을 지켜보자니 갑자기 안쓰러운 마음이 생겨났다.
"지희야"
나는 나즈막히 이름을 부르며 그녀의 입술을 찾았다. 차거운 밤기온 탓인지 그녀의 입술은 조금씩 떨고 있었다. 나는 애처로운 그 입술에다 뜨거운 나의 마음을 알려주고 싶었다. 머리를 감싸고 있는 내 손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는 순간 떨고 있던 그녀의 입술은 조심스럽게 나의 혀를 받아들였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니.
주저 앉고 싶을때가 하루에도 몇번씩 있었지만 딸아이 때문에 견디고 있어요.
내가 그 무거운 짐을 조금 덜어줄수 있을까.
제가 울때마다 지금 처럼 안아 주시면 돼요.)
우리는 그날 그 해변에서 서로의 혀를 주고받으며 말없는 대화를 오래도록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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